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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7 NHK에 어서오세요

좀 지난 애니지만 예전에 안군이 정말 강추하기도 했고 마침 브로드앤티비 VOD 리스트에 떡하니 있길래 보게 됐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모른 채로 봤는데... 중2병에 쩔어 살던 시절에 제가 생각했던 시나리오를(결국 당시에는 귀차니즘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함) 좀 더 일본식으로, 그리고 훨씬 예리하게 표현한 작품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반갑더군요.

기본적인 내용은 히키코모리(방구석 폐인)인 주인공 사토의 폐인 탈출기를 그리고 있는데 폐인 탈출기의 모범적 해답을 제시하는 그런 내용은 아닙니다. 히키코모리 탈출은 어처구니 없이, 너무 동물적이고 뻔한 이유로 이루어지죠-_-; 그보다는 사토를 구원함과 동시에 자신도 구원을 받고자 했던 미사키, 소심하고 예민한 오타쿠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을 바치는 야마자키등등, 매력적이지만 뭔가 중요한 나사가 한둘씩 빠져있는 캐릭터들과의 에피소드가 적절하게 얽혀있어 멋진 작품이지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거나, 혹은 상대방이 자기보다 못하다는 최면을 걸며 살살아간다"라는 대사는 이 애니의 핵심이자, 동시에 일본사회 전반을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노 교수님의 말씀을 빌자면 이제는 일본인에게 '문화'가 되어버린, 이지메나 히닌(非人)신분의 존재가 그와 같은 맥락이죠. 이지메의 경우,자신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 이지메 상대가 전학이나 자퇴 등으로 사라지더라도 다른 대체자를 찾아 이지메를 시작하고, 에도시대 사실상의 최하층 신분이었던 농민의 정신적 위한을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만든 히닌제도(말그대로 천민이죠)는 비인간적이긴 해도 정치수단으로서의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당시로서는 예술작품에 가까웠죠.

좀 다른 길로 셌는데, NHK에 어서오세요 역시 그 라인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히로인인 미사키가 사토에게 접근한 가장 주된 이유 역시 그것이었고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구제불능 히키코모리인 사토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어갑니다. 사토는 먹이사슬 최하층의 호구였던 셈이죠. 하지만 이 구도가 2번 깨지게 되는데 첫 번째는 반장의 오빠가 게임속에서 건낸 대사 "너한테까지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라는 대사,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 미사키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토에게 제안한 종신계약(고백)이 깨지는 부분. 거기서 미사키는 자살시도에까지 내몰리게 되고 맙니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패배하는 기분이라는 건 참 더러운가봅니다. 저도 2년 전에 비슷한 꼴을 당해봤는데 참...-_-;;;;(저를 개인적으로 알고계신 분이라면 대부분 알고계실 이야기)

극단적이고 과장된 묘사는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먹히지 않는 소재입니다. 현실성이란 부분에서 걸리지요(우리나라도 막장드라마가 나오고는 있지만...). 하지만 극단적 묘사는 일본 극문화의 상징인 만큼, 적어도 애니메이션에서는 정말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사토의 찌질함은 중간에 티비 끄고 싶어질 정도로 극을 달리고 등장인물 중에 멀쩡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극단을 달리지만 그렇게 과장된 인간상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와의 공감을 이뤄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찌질한 사토의 행동에 환장할 뻔 했지만 한편으로는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서 놀랐습니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보니 뭔가 더 와닿는 애니군요. 저도 배고파지면 정신 좀 차릴까요?
Posted by As Kaf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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